수없이 봐왔던 내용을 펼쳐 읽는 순간,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더 이상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분을 알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지능이나 교육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학교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마땅히 누려야 할 축복을 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주제는 계시입니다. 그분이 진정 누구신지 알게 되면,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강력한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마음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또한 나를 믿으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며,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언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만물의 창조주께서 친히 여러분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유대인 결혼식을 이해하는 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유대인 문화에서는 약혼이 결혼과 마찬가지로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맞이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떠났고, 신부 아버지의 승인을 받아야만 신부를 데리러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신부는 날짜와 시간을 몰랐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신랑이 도착했을 때, 주변은 조용하지 않았다. 나팔 소리와 축하 행사, 그리고 행렬이 이어지며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왔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내용을 묘사하고 계신 겁니다. 예수님은 처소를 예비하시고, 아버지께서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서 신부를 데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그 길을 안다”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솔직하게 “모른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
그러자 예수님은 곧바로 그들의 관점을 바꿔놓으셨습니다. 이제부터 그들은 아버지를 알게 되었고, 그분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빨리 바뀌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한순간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쉽게 갇히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모르겠어." 또는 "나는 하나님과 가깝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와 같은 말을 하곤 하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믿을 건가요, 아니면 예수님을 믿을 건가요?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분을 안다고 말씀하시면, 당신은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행한 일들을 행할 것이며, 더 나아가 내가 행한 일들보다 더 큰 일들도 행할 것이다.”
그건 특정 집단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목사님이나 성경학교 출신, 혹은 모든 걸 다 아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라고 했죠.
그러고 나서 그는 더욱 어려운 과제를 덧붙였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부탁하면 들어주겠다.”
우리는 그런 말을 읽고 나면 곧바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한계와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걸러내기 시작하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큰 것을 구하는 것을 주저하는데,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왜 구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하고 그분이 응답하실 때, 그것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큰 것을 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도 없고, 영광도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을 구하는 대신 더 큰 것을 구해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을 때, 단순히 기도 끝에 말을 덧붙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그분의 권위와 정체성, 그리고 그분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결혼과 같아요. 한쪽에 속한 것이 이제 다른 쪽에도 속하게 되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분의 것이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그분의 자원에는 한계가 없어요. 그분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구할 때, 제한된 자원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나중에는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공부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분을 아는 것은 그분이 당신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깨우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성경을 읽어도 모든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과 함께라면 말씀이 살아 숨 쉬게 됩니다.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책망하시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책망이 압박감, 수치심, 또는 정죄감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남겨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선물 하나를 남깁니다. 바로 마음과 영혼의 평화입니다.”
하나님은 압박으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평화와 기쁨과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심지어 그분의 훈계조차도 수치심이 아닌 자유를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만약 당신이 끊임없이 압박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압박감은 거부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의 간단한 진리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충분히 했는지, 금식을 충분히 했는지, 모든 것을 제대로 했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에게서 자신에게로 옮겨가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함정입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방식을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대신,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아버지, 저는 당신을 압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가 주님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압니다.
나는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압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그 상태에서 담대하게 질문할 수 있고, 온전히 믿을 수 있으며,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진리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을 새로운 시작점으로 삼으십시오. 이제부터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이제부터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분께서 "너희가 그분을 알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